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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건흥산(거창)

by 푸른솔의 2015. 12. 12.

2015 거창 건흥산(572m), 아홉산(취우령 795m)  김길준, 김효중  3시간40분

산성교 10:05 - 거열산성 - 건흥산 11:10 - 점심 11:55~12:25 - 아홉산(취우령) 13:00 - 상율마을 갈림길 13:30 - 상율리 앞 도로 14:15 - 승합차 타고 산성교까지

 

아홉산의 동쪽,

당시 신라의 첫 동네인 지내는

지내가 아닌 갈지渴旨마을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당시 조선 전역의 지명은 거의 다 일본인들의 주도 아래 엉터리로 고쳤는데

우리 민족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일거에 갈아엎는 침략자의 계산된 만행이다.

이는 우리 상고역사가 실린 서적 20만 여권을 찾아내 없애버린 것보다 더욱 엄청난 만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내마을 이장님의 옛 마을 이름 찾는 분투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홉산은 명확하게 아홉 골이 아니나 아홉에서 빠지지 않는 골짜기를 안고 있다.

먼저 그 골짜기 중의 하나인 백제의 첫 동네 영승마을에 전해오는 서동과 선화공주에 대한 설화가 있다.

이 설화는 둘로 나뉘어 전해오는데

하나는 서동이 경주로 가서 서동요를 퍼뜨려 궁에서 쫒겨난 선화공주를 서동이 같은 말 잔등에 태우고 넘어온 이야기다. 서동이 퍼뜨린 노래가 경주 구석구석을 떠다니자

분노한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궁에서 쫓아낸다.

서동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화공주를 말 잔등에 태우고는 달리고 달려 국경인 아홉산을 넘어

백제 땅의 첫 동네인 영승에 들어서서 말에서 선화공주를 내린다.

그리고는 자신은 백제의 왕자라고 말하고

선화공주와 백제 땅으로 가서 무왕으로 오르고 선화공주는 왕비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서동이 서동요를 경주에 퍼뜨렸으나 선화공주를 얻지 못하고 백제 땅으로 넘어와 무왕에 오른다.

서동요 때문에 행실이 나쁜 공주로 낙인찍힌 선화공주는 결국 아버지 진평왕의 진노로 쫓겨난다.

갈 곳이 없는 선화공주는 할 수 없이 서동을 좇아 신라의 국경을 넘는다.

신라의 첫동네 지내에서 아홉산 국경을 넘은 선화공주는 백제 국경인 영승에서 수비대에 붙잡힌다.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였으나

첩자로 오인 받은 선화공주는 국경 수비대의 고문을 못 이기고 취우령에서 쓸쓸하게 죽는다는 내용이다.

뒷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무왕(서동)은 신라와 숱한 전투를 벌인다.(실제로 전투가 많았다.)

어느 쪽 이야기가 맞든 틀리든 대단한 내용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은

서동이 경주로 가서 서동요를 퍼뜨려 곤경에 빠진 선화공주를 말에 태우고는

당시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 정도만 알고 있다.

같은 말을 탄 서동과 선화공주가 경주에서 부여를 갈 때 어느 길로 갔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말을 타고 갔든 

경주에서 동해, 남해, 서해로 배를 타고 부여로 들어갔는지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가 없다.

  [출처] 오래된 국경의 도시 거창, 아홉산 이야기|작성자 거창군

 

건산의 블러그에서

산성교

 

물레방아를 지나 건계정을 앞에두고 산행길이 시작 된다. 건계정을 들러보았어야 되는데. . .

 

오름길

 

 

거열산성 정상부근은 아직 복원 중

 

 

 

건흥산 정상 앞의 소나무

 

 

 

건흥산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산이 기백산인듯. 그 앞이 오두산(조두산)

 

아홉산(취우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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