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향토문화바로알기직무연수
2016.02.01~03 경주일대
02.01 괘릉, 성덕왕릉, 신문왕릉, 월성, 황룡사지, 분황사, 나정, 포석정지
02.02 옥산서원, 독락당, 양동마을
02.03 남산 답사(삼릉계곡-용장계곡)
괘릉(38대 원성왕릉) - 괘릉(掛陵)이란 이름은 왕릉이 조성되기 이전에 연못이 있어 유해를 물 위에 걸어 안장하였을 것이라는 속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의 왕릉 중 가장 잘 갖추어진 형식이다. 면석, 탱석, 십이지신상, 판석, 돌난간
서역인상 - 서역인 얼굴, 머리부분에 중앙아시아식 터번, 오른팔은 위로하여 주먹을 움켜잡고 있으며 1.5m가량의 몽둥이를 왼손으로 짚고있는 모습. 무사 복장인 갑옷을 입지않고 아무 장식이 없는 부드러운 느낌의 옷. 아라비아 계통의 상인이 아닐까하는 견해가 있음. 상의 뒷모습 허리에는 주머니를 차고 있음.
관검석인 - 문복(文服)을 착용하고 있는 것 같으나 옷 속에 양손으로 칼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 옷자락 끝 아래에 칼끝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 문복이 아닌 양당개(兩檔鎧)라는 갑옷을 입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문관과 무관의 구별이 없었다.
석사자 - 4마리가 입구 양쪽에 각각 동서남북 네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신라 능묘의 사자상 중 가장 탄력적이고 힘이 넘치는 모습이며 익살스런 모습으로 이를 드러내고 웃고있는 모습도 있다.
사자의 뒷 모습. 꼬리의 모습이.
성덕왕릉 앞에 있는 귀부.
성덕왕릉 - 십이지신상과 회랑의 판석 바닥, 난간 등은 경덕왕대에 추가로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십이지신상의 배열이 규칙직이지 않다.)
성덕왕릉의 십이지신상(酉) - 대부분 훼손이 많이 되었다.
관검석인상
사자상
상반신만 남아있는 석인상
31대 신문왕릉- 32대 효소왕릉으로 추정된다.
능 앞의 소나무가 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월성 - 5대 파사왕 22년에 축조, 7월에 이거한 후 20대자비왕, 21대 소지왕의 13년간을 제외하고 신라의 신궁이었다. 삼국통일 이후에 월지(안압지) 일대로 확장되었다. 고려시대 이후에 반월성으로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월성의 석빙고(조선시대)
황룡사지
황룡사지 구층목탑지
분황사 모전석탑 - 분황사(향기나는 황제의 절) 원래 9층이었으나 정유재란때 탑이 파괴. 1915년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하여 복원하여 현재 모습
현재 복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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