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4 마산 무학산(761m) 나홀로 3시간10분
중리입구 11:00 - 낙남정맥갈림길 11:53 - 시루봉갈림길 12:23 - 시루봉전망바위 점심 12:35~13:00 - 정상 13:25 - 대곡산(516m) 14:20
- 만날고개 14:35
김해에서 대학 동기회 모임이 있어 가는길에 무학산 산행을 하기로. 안동에서 08시에 출발했으나 대구에 오니 아침에 눈이와서 그런지 정체가 너무 심하다. 대구를 통과하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대구 지나서도 눈이 계속 내려 도로 사정이 어떨까 걱정도 되었지만 오전중에 그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주차할 곳이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내서우체국 조금 지나서 골목길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건너 아직까지 눈이 계속 내리는 가운데 산행을 시작. 길은 도시 근교 산 답게 잘나 있고 곳곳에서 올라오는 길이 많이 있다. 많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하얗게 눈으로 덮힌 산길을 처음 밟아 지나가는 기분이 아주 좋아 자꾸만 길게 이어진 나의 발자국을 돌아본다. 조용한 숲길이 말 그대로 호젓하다. 이런 길이면 하루종일 걸어도 힘들것 같지 않다. 시루봉 전망바위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점심을 먹을 때쯤에는 날씨가 맑아져 사방이 확 트인다. 정상까지는 거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정상 조금 못미쳐에는 넓은 진달래밭이 나온다. 붉게 피어있을 봄날의 한 때를 상상해본다. 정상에서는 마산 시가지와 앞바다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한참을 정상에서 내려보며 감상하다가 학봉의 바위봉우리가 마음에 들어 학봉쪽으로 내려가볼까 망설이다 처음 계획대로 만날고개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또다시 길을 재촉한다. 길은 잘 나 있는데 이정표에 만날고개 방면으로는 표시가 되어있지 않는 곳이 많다. 방향만 잡아서 좋은 길로 내려오니 만날고개가 나온다. 이제는 차가 있는 중리쪽으로 가야할 일이 걱정이다. 택시를 탈까 생각하다가 마산시가지도 구경할 겸 경남대학 옆으로 한참을 걸어 내려와 251번시내버스를 타고 중리역까지.
만날고개 전설-박중영의 등산산행정보에서
고려 말 이곳에 양반 이씨 가문이 살았는데, 편모슬하에 3남매가 자라고 있었다. 홀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어럽게 생계를 이어왔으나, 고질병으로 병상에 눕게 되어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고개 넘어 감천골에는 천석꾼 윤진사댁이 있었다. 윤진사댁은 벼슬을 돈으로 샀을 정도로 부유했으나, 반신불수에 벙어리인 노총각 아들이 있었다. 혼사를 위해 사방 곳곳에 수소문 하였으나 혼처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양쪽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행상아주머니에 의해 서로 혼담이 오갔다. 결혼만 한다면 재물을 주겠다는 윤진사의 말에 이씨 가문의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자신의 희생으로 다른 가족이 편하게 살길 바란 큰딸은 시집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집 간 큰딸의 고초는 말이 아니었다. 시부모는 날마다 남의 집 재산 거덜 낸 년이라고 흉한 소리를 하고, 신랑이 약해서 갖지 못한 아기도 며느리에게 뒤집어 씌웠다. 힘든 시집살이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큰딸을 보고, 남편은 아내를 마산포가 내려다보이는 고개로 데려가 친정집에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3년만에 고향집에 들린 큰딸은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자신을 기다릴 남편 생각에 서둘러 고갯마루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남편이 '집을 도망쳐 새 삶을 찾으라'는 유서를 써놓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아내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아내는 이런 남편의 정을 생각하며 시댁에 머무르며 수절을 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너무나 친정이 그리워 혹시나 친정집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이 죽었던 그 고개에 올랐다. 때마침, 마산의 친정어머니도 시집간 딸이 그리워 고개에 올라 우연히 만난 모녀는 그 자리에서 얼싸안고 울었다 한다. 이후 이곳은 만날고개라 불리게 되었으며, 현재도 매년 음력 팔월 열이렛날이 되면 만날고개에서 행사가 열려, 헤어진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수백명씩 찾아오고 있다.
부산일보 산&산<119>에서
소나무 숲길
시루봉 전망바위에서 본 시루봉-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정상에서 시루봉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온다.
정상
정상에서본 마산 시가지와 앞바다
조금 지나가서 바라본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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