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0.03 양산 천성산(811m) 김길준 6시간35분
안동출발 06:30 익성암주차장(산행시작) 09:15
공룡능선 짚북재 12:00 천성산제2봉 13:00
점심 13:00~13:45 화엄벌 14:27 내원사주차장 16:10
하산주 16:10~16:35 익성암주차장(산행끝) 17:00
공룡능선에 올라서니 곳곳에 있는 암자들이 눈에 뜨인다. 천명의 성인을 배출한 산이라나.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소리, 끊어졌다 이어졌다 간간히 들려오는 스님의 불경소리, 가파른 공룡능선을 오르며 들려오는 소리에 피로를 풀어준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 역시 힘들다. 엊그제 긴 산행에 아직 피로가 덜 가신 것 같다. 공룡능선에선 등산객이 적어 조용한 산행이었는데 짚북재에서부터는 100대 명산답게 등산객들이 많아진다. 제2봉 정상까지 3시간45분. 바위 봉우리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멀리 보이는 제1봉의 억새밭 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 식사 후 다시 제 1봉으로, 1봉은 군사시설이라 접근금지, 지뢰매설지대란다. 정상부근을 돌아서 화엄벌에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 억새밭 사이로 1시간 가까이 지나간다. 길 옆이 �지보호구역인데 �지인지 잘 모르겠다. 내원사 코스는 막혀져 있다. 그냥 넘어서 통과, 필요한 길을 막으니 또 다른 길을 낼 수 밖에 좋은 길을 왜 막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마지막으로 맑고 깨끗한 내원사 계곡이 좋다.
<천성산의 유래> - '박중영의 등산산행정보'에서 퍼옴
천성산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811m봉을 천성산, 922.2m봉을 원효산이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으나, 양산시는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산경표> 등의 고서에 원적산 또는 천성산이라 나와 있다는 사실과, 원효의 가르침을 받아 1천 성인이 나옴에 따라 생긴 산이름 유래에 맞추어 두 산 모두 천성산으로 부르기로 결정, 국립지리원에 산이
름 정정을 요청해 놓았다. 천성산의 이름은 <송고승전>에 나와 있는 대로 이른바 원효의 척반구중(밥상을 던져 많은 사람을 구함) 설화와 관계가 있다. 원효가 대운산 척판암에서 참선에 들어가 있을 때 당나라의 담운사 스님들이 산사태가 집을 덮치려하는 줄도 모르고(또는 집이 무너져 내리는 줄도 모르고) 공양 중인 것을 신통안으로 보고, 앞에 놓인 밥상을 던져 날렸더니, 그 소리에 놀란 1,000 승려가 집 밖으로 나와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혹은 물을 뿜어 불에 타서 죽기 직전 구했다고도 한다). 이후 목숨을 건진 1,000 승려가 당나라에서 원효대사를 찾아옴에 그들이 머물 곳을 찾으려고 천성산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내원사 부근에 이르러 산신이 마중오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이에 원효가 그곳에 내원사를 짓고, 주변에 89암자를 짓고 1천 제자를 머물게 했다 한다. 그리고 내원사 위쪽 봉우리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집북재), 북을 쳐 산내의 제자들을 불러모아 설법을 열고 화엄경을 강론했다고 전한다. 제자들이 산을 오르다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자 산신령을 불러 칡넝쿨을 없애게 했고, 이후 1천 제자들이 모두 성인이 됨에 산이름을 천성산이라 지었다는 것이다. <조선사찰전서>에는 원효가 1천 승려를 가르친 뒤 그 중 8명을 데리고 팔공산에서 견성케 하고, 4명을 사불산에서 득도케 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천성산에서는 988명이 득도한 셈이다. 내원사는 현재 선나원, 정려현, 죽림원, 원화당, 간월당, 심우당, 산령각, 일주문 등 13동에 달하는 당우가 들어선 비구니 선찰로, 금강대, 금봉암, 노전암, 대성암, 미타암, 비로암, 성불암, 안적암, 원효암, 익성암, 조계암 등 산내 암자와 더불어 통도사 말사로 조계종에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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